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의문점
고구려는 초기부터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의 기사가 교차 검증되므로 실제로 704년 간 존속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백제와 신라의 경우 중국 사서 및 고고학적 편년에 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연대가 앞당겨져 있음이 드러나 곧이곧대로 신뢰하기 어려움.
가령 백제본기에서는 서기 1세기에 백제가 마한을 복속시켰다고 했지만, 삼국지에서는 서기 3세기 중반까지 목지국이 마한의 수장이었고 백제는 일개 소국이었다고 서술되어 있으며 고고학적으로도 충청도 일대의 세력들이 침략이라도 받은 것마냥 한순간에 사그라드는 시점은 3세기 중후반임.
신라본기에서도 2세기 후반에 활동한 구도 갈문왕의 아들이 3세기 후반에 활동한 미추 이사금이며 구도의 손자는 4세기 후반에 활동한 내물 마립간이라든지, 253년에 사망한 석우로의 아들 흘해 이사금이 310년 즉위 당시에 어린 나이였다든지, 240년대에 활동한 왜왕 히미코가 173년에 신라를 방문했다는 등 연대 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서술이 자주 발견되고 있음. 고고학적으로도 101년에 축조되었다던 경주 월성에서 3세기 후반 이전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모순되는 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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