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미스터리 나라 '탁순국'
정체불명의 미스터리 나라 '탁순국'
정체불명의 미스터리 나라 '탁순국'
탁순국은 대구 창녕 창원에 있던 고대 왕국이다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 근초고왕은 서기 364~369년 사이 탁순국에 사신을 보내서 선물들을 주고
"야마토와 교류하고싶은데 좀 길 안내 좀"하자
탁순국 통치자 '말금한기'가 "껄껄 난 원체 길을 몰라서.."하고 거절했다가
말금한기가 속으로 "흐음... 백제와 손잡고 백제,금관가야,탁순,안라가야,야마토 이렇게 서로 딱 동맹 맺으면
함께 신라를 조지면 딱 좋겠네?"하고선
마음 바꿔서 "껄껄.. 길을 안내하지요"해서
근초고왕이 보낸 백제 사신은 금관가야 항구에서 배 타고 야마토로 가서 야마토의 여자 통치자 신공황후를 만나
예물을 바치고 함께 신라 조지자고 한다
신공황후가 ㅇㅋ하고 서기 249년(사실은 서기 369년인데 120년 차이로 잘못 적음. 왜냐면 당시 신라,일본은 둘 다 쓰는 달력이 이상했음.)
백제 탁순 가야 야마토 연합군이 함께 신라를 조져서 신라의 통치자 '우류 조부 리지 간宇流助富利智干(삼국사기엔 조분 이사금의 신하 석우로로 나옴)'을
해안가에서 처형했다 그후 근초고왕은 야마토에 칠지도를 하사함 칠지도에 야마토에 칠지도 하사한 연도가 중국 동진 제국의 태화 4년(서기 369년)으로 적혀있고
일본서기에는 근초고왕이 칠지도 하사한게 서기 249년. 삼국사기 석우로전엔 석우로가 신라 수도로 쳐들어온 왜군에게 항복하고 해안가에서 처형당한게
서기 249년으로 나옴. 그래서 서기 369년이 맞음.
그럼 이 탁순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중국 기록 양직공도엔 '탁'이란 이름의 나라로 나온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물 마립간편을 보면
"재위 21년(서기 376년) 가을 7월에 부사군(夫沙郡)에서 뿔이 하나 달린 사슴을 바쳤다. 크게 풍년이 들었다."
二十一年, 秋七月, 夫沙郡進一角鹿. 大有年.
이런 기록이 나온다.
부사군(夫沙郡) 은 위치 미상인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에 달린 주석을 보면
삼국사기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유사 지명을 찾아보면, 분차군(分嵯郡)의 이명(異名)이 부사(夫沙)로 되어 있다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백제 무진주). 분차군은 신라 경덕왕 때 분령군(分嶺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때에는 낙안군(樂安郡)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혹은 벌교읍 고읍리에 해당한다.....
(중간 책사풍후 주석 :
부사군은 [삼국지 동이전 시대(국립중앙박물관식 표기론 '삼국시대' 이전의 시대인 '원原(오리지널) 삼국시대']에는
'불사분야국不斯濆邪國'이란 작은 마한 계통의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한국 학자들의 연구를
구글 검색으로 확인 가능하다.
불사분야국은 삼국지 동이전의 변한편 기록을 보면 변한의 12나라 중에도 불사국不斯國이란 나라가 있다.
불사분야국.. 불사국 둘 다 같은 종족이 세운 2개의 나라로 볼 수도 있다.
불사분야국은 전라남도 순천. 불사국은 창녕의 탁순국의 옛 이름)
‘불사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의 옛이름인 ‘비사벌(比斯伐)’에 비정하고 있다. 비사벌은 ‘빗불〔非火〕’·‘비자불〔比自火〕’·‘비자벌(比子伐)’로도 표기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불사국(不斯國))]
만약 부사군이 분차군 그리고 불사분야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두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는 당시 군제(郡制)가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분차군은 당시 신라 영역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부사군 자체는 분차군을 지칭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기에 분차군에서 신라 중앙에 서상물을 바쳤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역시 간단히 해결된다.
서기 3세기 말~서기 4세기 초 마한의 54국 하나였던 작은 소국 백제가 한강 유역을 벗어나 더 큰 나라로 발전하며
주변의 마한족 나라들을 차례 차례 먹어 마한 연맹의 회장국인 충청도 천안의 목지국을 붕괴시켰다.
그후 전라도 순천의 마한 계통의 불사분야국은 의지할 곳을 잃었고 같은 종족이 세운 경상도 대구 창녕 창원을 다스리는 탁순국과 힘을 합쳤을 것이다.
그래서 마한의 부사군(불사국)에서 신기한 사슴을 신라의 내물 마립간에게 바쳤다는 기록은 사실
창녕의 탁순국의 말금 한기(한기는 지도자란 뜻이며 말금은 그 지도자에게 붙이는 존칭)에게 바친 것이고
사실 마립간이나 말금이나 다 비슷한 말로 볼 수도 있다.
말금=마립간
신라는 서기 3세기 삼국지 동이전 시대에 경주의 작은 도시 국가였고 '진한'이란 연맹의 회원국이었다.
서기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당시에도 신라는 예전보단 좀 세졌지만 왜군이 쳐들어오면 바로 수도 서라벌(경주)이 포위당하는 작은 도시 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신라가 전라남도 순천의 불사국에서 사슴을 조공 받았다는건 있을 수 없다.
신라인들이 서기 6세기 초 탁순국,금관가야를 멸망시킨 후 탁순국,금관가야의 통치 기록을 은근슬쩍 자기들 왕들의 기록에 섞어버렸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 내물마립간 편을 보면 "재위 11년(366) 봄 3월에 백제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근데 일본서기를 보면 서기 364년~서기 366~서기 369년에 백제 근초고왕이 탁순국에 사신을 보내 선물들을 바치고
야마토로 가게 길 안내 해달라고 요청한 후 백제,탁순,금관가야,야마토의 동맹이 결성되고 바로 신라를 쳐서 깨뜨렸다고 나온다.
근초고왕은 신라를 깨뜨릴 생각인데 뭐하러 신라에 예물을 바칠까?
삼국사기 신라 내물마립간편 재위 11년에 백제 사람이 예물을 바쳤다는 기록은 사실 탁순국의 통치 기록이 섞여들어간게 아닐까?


댓글
댓글 쓰기